
경남 산청과 하동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발생 엿새째를 맞은 가운데, 결국 불길이 지리산국립공원 경계 안으로 번졌다.
이로써 국내 최대 자연보호구역 중 하나인 지리산국립공원마저 화마의 위협을 피하지 못하게 되면서 상황은 한층 심각해졌다.
26일 산림청과 경상남도에 따르면, 이날 정오께 산청군 시천면 구국산 일대에서 번진 산불이 지리산국립공원 경계 안으로 확산된 것이 확인됐다.
당초 해당 지역은 전날까지도 국립공원 경계 400m 앞까지 접근했으나 주불은 대부분 진화됐다는 판단이 내려졌었다.
그러나 밤사이 바람이 강해지고 불씨가 되살아나면서 결국 국립공원 내로 불길이 번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현재 국립공원 내부의 피해 면적과 피해 규모는 집계 중에 있다.
지리산국립공원은 해발 900m 이상의 고지대가 많은데다, 지형이 험준하고 골이 깊어 중소형 헬기의 진입이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오전 내내 짙은 연무로 인해 진화헬기들이 이륙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며, 초기 확산 차단이 사실상 불가능했다.
기상청에 따르면 이날 밤부터 약 5㎜ 안팎의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돼 있지만, 이 정도 강수량으로는 화재 진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산불은 산청 지역을 넘어 인근 하동군 옥종면 지역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이 지역은 민가와 자연휴양림, 송전탑 등이 밀집된 구역으로, 소방당국은 우선 이들 주요 시설과 인명 피해를 막기 위한 방어라인을 구축하며 진화에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불길은 여전히 강풍을 타고 주변 산림으로 확산되고 있어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이다.
산림 피해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26일 정오 기준으로 산림청은 산불로 인한 피해 면적이 1702헥타르(ha)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이는 하루 전보다 130ha 이상 증가한 수치다.
전소된 건물도 주택, 사찰, 공장 등 총 64개소에 달하며, 인명 피해 역시 누적돼 현재까지 4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부상을 입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단일 산불 사태로는 최근 수년 간 가장 큰 피해 규모다.
대피 인원도 크게 늘었다. 하동 옥종면 일대에 추가 대피령이 발령되면서 대피 인원은 총 1782명으로 증가했다.
이들은 대부분 인근 체육관과 마을회관, 임시 대피소 등으로 이동해 불편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대피자 중 상당수가 7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어서 건강 악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실제로 한 주민은 고혈압약을 챙기지 못한 채 급하게 대피하면서 혈압이 200을 넘기는 등 건강에 적신호가 켜진 상태다.
산청군 주민 전행자(73) 씨는 “약을 며칠 못 먹었더니 머리가 너무 아프고 혈압이 크게 올랐다”며 “진료를 받고 간신히 버티고 있다”고 토로했다.
현장에서는 진화 인력의 피로도도 극에 달하고 있다.
산불이 장기화되면서 진화대원들은 2교대로 나뉘어 야간 작업까지 이어가고 있지만, 넓은 산림 지역을 커버하기에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지리산 주변 낙엽층이 두껍고 지형이 험한 만큼, 완전 진화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전날 90%에 달하던 진화율도 이날 낮 기준 75%로 떨어졌다. 불씨가 다시 살아난 곳들이 다수 발견되며 잔불 정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남도는 인근 지자체와의 협력을 통해 추가 헬기 투입을 요청하고 있다.
박명균 경상남도 행정부지사는 이날 산청군 단성면에 마련된 산불현장통합지휘본부 브리핑에서 “전북과 전남 등 인근 자치단체에 헬기 지원을 요청해 현재 순차적으로 투입 중”이라고 전했다.
이어 “불씨가 낙엽층 아래 숨어 있어 쉽게 꺼지지 않고 재발화되고 있다. 국립공원 직원들까지 총동원해 진화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엿새째 이어지는 대형 산불로 지리산국립공원까지 위협받고 있는 이번 사태는 단순한 지역적 재난을 넘어, 국가적 산림 보존의 위기라는 인식으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이번 산불이 초래한 인명, 재산, 환경적 피해는 이후에도 장기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당국의 신속하고 체계적인 대응과 함께 피해 지역 주민들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소율 (lsy@sabanamedia.com) 기사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