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 발길 뚝…자영업자들 ‘눈물의 술값 할인’ 총력전

경기 침체 속에 외식 물가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인 가운데, 유독 술값만은 ‘역주행’하고 있다.
불황으로 인해 외식 고객 발길이 줄자 식당들이 손님 유치를 위해 소주·맥주 가격을 인하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외식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매출 방어에 고전 중이며, 결국 마진이 비교적 높은 주류 가격부터 낮추는 고육지책을 선택한 셈이다.
지난 6일 통계청이 발표한 ‘2025년 3월 소비자물가 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소주(외식) 가격은 전년 동월 대비 1.3% 하락했다.
이는 2023년 9월부터 7개월 연속 이어진 하락세로, 통계가 시작된 2000년 이후 단 두 번째로 나타난 현상이다.
맥주(외식) 역시 지난해 12월부터 4개월 연속 하락세를 보이며 지난달에는 -0.7%를 기록했다.
특히 맥주 외식 가격의 지속적인 하락은 1999년 이후 약 26년 만에 처음 나타나는 기록적인 수치다.
외식 술값의 이례적인 하락은 다른 품목과의 흐름과 확연히 대비된다. 외식 전체 물가 상승률은 2021년 6월 이후 46개월 연속으로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웃돌고 있다.
실제로 기타 음료(외식) 물가는 지난달에도 1.3% 상승했으며, 막걸리(외식) 가격도 2.5% 상승했다. 소주와 맥주만 유일하게 내림세를 보인 셈이다.
주류 출고가가 하락한 점도 영향을 미쳤지만, 전문가들은 이보다는 외식업계의 자발적인 가격 인하 전략이 더 큰 원인이라고 진단한다.
지난 2023년 12월 일부 주류업체가 출고가를 내리기는 했으나, 그 시점 이후에도 식당에서의 술값은 소폭 조정에 그쳤고 오히려 최근 들어 마이너스 물가로 돌아선 점은 구조적 요인이 작용했음을 시사한다.
현장에서는 손님을 붙잡기 위한 가격 프로모션이 잇따르고 있다. “소주 반값”, “맥주 무료 리필”, “생맥주 1잔 1000원” 등의 문구는 이제 흔한 홍보 수단이 됐다.
고깃집, 횟집, 포차를 가리지 않고 주류 가격을 낮추는 업소들이 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통계에서도 주류 품목만 역주행하는 흐름이 가시화된 것이다.
이 같은 흐름은 ‘저가형 포차’ 브랜드의 급성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23년 말에 첫 지점을 오픈한 한 포차 프랜차이즈는 맥주 1900원, 닭날개 900원이라는 저가 메뉴 전략으로 소비자들의 호응을 얻었고, 현재 전국에 180개가 넘는 지점을 보유하게 됐다.
또 다른 고깃집 프랜차이즈는 소주·맥주를 2000원에 판매하는 전략으로 불과 1년여 만에 매장 수를 220개 이상으로 확대했다.
이들이 빠르게 시장을 장악하자 인근 일반 식당들 역시 경쟁적으로 술값을 인하하면서, 외식 주류 시장 전반에서 가격 하락이 확산되는 형국이다.
이러한 현상은 외식 자영업자들의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식재료 가격, 인건비, 임대료 등 고정비는 여전히 상승세를 타고 있는 반면, 소비자의 지갑은 쉽게 열리지 않는 구조 속에서 주류는 유일하게 조정 가능한 가격 요소가 된 것이다.
메인 요리 가격을 쉽게 내릴 수 없는 상황에서, 비교적 마진이 크고 ‘미끼상품’ 역할도 할 수 있는 소주와 맥주가 타깃이 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주류 가격 하락이 단기적인 고객 유인에는 효과적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회복세를 기대했던 외식 자영업자들이 다시 한번 생존을 위한 치열한 가격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는 점에서 구조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소비자 입장에서는 술값이 저렴해진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그 이면에는 자영업자들의 눈물 어린 생존 전략이 있다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외식 시장 내 가격 인하 경쟁이 과열되면 품질 저하나 서비스 축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
이처럼 외식업계의 주류 가격 인하는 단순한 ‘할인’이 아닌 생존을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당분간 식당가를 중심으로 소주와 맥주의 ‘물가 역주행’ 현상은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보이며, 이는 외식 시장 전반의 흐름을 보여주는 지표가 되고 있다.
이소율 (lsy@sabanamedia.com) 기사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