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 위기, 30대·저소득 계층 심각…도움 요청은 소수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건강재난 통합대응을 위한 교육연구단이 전국 성인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건강 실태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장기적인 울분 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15일부터 21일까지 웹 기반 설문을 통해 진행됐다.
조사에 따르면 한국 사회의 정신건강 수준에 대해 48.1%가 ‘좋지 않다’고 응답했고, ‘보통’은 40.5%, ‘좋다’는 11.4%에 불과했다.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주는 사회적 분위기로는 ‘경쟁과 성과를 강조하는 사회'(37%)가 가장 많이 지목됐으며, ‘타인의 시선과 판단이 기준이 되는 사회'(22.3%)가 뒤를 이었다.
정서 상태를 측정한 자가 보고형 척도 결과에 따르면, 12.8%는 ‘심각한 수준의 울분’을 호소했으며, 이들을 포함한 54.9%가 장기적인 울분 상태에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30대에서는 심각한 울분 비율이 17.4%로 가장 높았고, 소득 200만 원 미만 계층은 21.1%에 달했다. 고소득층(1000만 원 이상)은 5.4%로 상대적으로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계층 인식별로는 자신을 ‘하층’이라고 여긴 응답자 중 16.5%가 심각한 울분 상태에 있었으며, ‘중간층’은 9.2%, ‘상층’은 15.0%였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공정하다’는 진술에 대해 69.5%가 동의하지 않았으며, 연구진은 공정세계 신념이 낮을수록 울분 점수가 높아지는 경향이 통계적으로 유의하다고 밝혔다.
지난 1년간 건강에 영향을 줄 정도의 스트레스를 경험한 사람은 47.1%였다. 특히 40대(55.4%)와 30대(51.7%), 소득 200만 원 미만 계층(58.8%)에서 높은 비율을 보였다.
스트레스 원인으로는 건강 변화(42.5%), 경제 수준 변화(39.5%), 관계 상실(20.7%)이 주를 이뤘다.
사회적 원인으로는 인간관계 변화(30.2%), 고용 상태(23.7%), 정치환경 변화(36.3%) 등이 포함됐다.
정신건강 위기를 경험한 응답자는 27.3%에 달했으며, 이들 중 절반 이상(51.3%)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자살 계획 경험자는 20.5%, 실제 시도 경험자는 13.0%로 확인됐다. 그러나 위기 상황에서 실제로 도움을 요청한 비율은 39.4%에 불과했다.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는 ‘낙인과 타인의 시선에 대한 두려움'(41.9%)이 가장 많았다.
스트레스 대처 방식으로는 ‘가족이나 친구에게 털어놓는다'(39.2%)가 가장 많았고, ‘혼자 참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38.1%)는 응답도 높게 나타났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다는 응답은 15.2%에 그쳤다.
조사 책임자인 유명순 교수는 “정신건강 위기를 경험한 응답자 네 명 중 세 명 가까이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고, 그 이유로 낙인과 두려움이 가장 많이 지목됐다”며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인식과 대응 태도 사이의 간극을 좁히기 위한 사회적 소통과 실천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배동현 (grace8366@sabanamedia.com) 기사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