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송 산불로 보광사 만세루 전소…문화재 피해 잇따라 확산

경북 북부권에서 시작된 산불이 나흘째 이어지면서 피해 범위가 확산되는 가운데, 결국 경상북도 청송까지 화마가 덮쳤다.
그 여파로 경북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보광사의 누각, 만세루가 완전히 소실됐다.
수백 년의 역사를 간직한 건축문화재가 산불로 인해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면서 문화재 보호 대책 강화의 필요성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다.
26일 국가유산청은 청송군에 위치한 보광사 만세루가 이번 산불로 전소됐다고 공식 확인했다.
만세루는 조선 세종 때 부사 하담(河澹)의 주도 아래 청송 심씨 시조인 심홍부(沈洪夫)의 묘재각으로 건립된 누각으로, 문화재적·역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유산으로 평가받아 왔다.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초석을 얹고, 원기둥을 세운 주심포계(柱心包系)의 대표적 목조건축물로서 조선 전기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희귀한 사례다.
만세루의 정확한 건립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청송군 월막리에 위치한 15세기 건축물 찬경루와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누각은 보광산 자락에 위치한 심홍부의 묘소 인근에서 제례를 지낼 때, 비가 오는 날에 사용되던 공간으로 전해진다.
조선시대 성리학적 예제(禮制)를 보여주는 지역 사우 건축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서, 후손들의 제향 문화와 지방 사찰 건축의 특성을 아우르고 있었다.
이번 화재로 보광사 만세루는 불에 완전히 소실되며 그 역사적, 건축적 가치를 더 이상 실물로는 확인할 수 없게 됐다.
국가유산청은 “산불 진화 완료 후 국가유산 피해 여부를 보다 정밀하게 파악하고 있으며, 특히 위험 지역 국가유산 중심으로 긴급 보호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가유산 피해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앞서 의성 지역에서 발생한 산불로 보물로 지정된 고운사 연수전과 가운루가 전소되면서 이미 전국적으로 문화재 보존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번 청송 만세루의 소실은 이러한 우려를 다시금 현실로 보여준 사건이 됐다.
다행히 당초 화재 피해가 우려되던 경북 안동의 문화유산자료 만휴정은 큰 피해 없이 보존된 것으로 확인됐다.
국가유산청은 안동시, 경북북부돌봄센터, 소방서 등 관계기관과의 합동 작업을 통해 기둥과 하단 목재 구조에 방염포를 전체 도포했고, 원림 지역에는 사전 살수 작업을 실시해 산불이 접근하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실제로 일부 소나무에서 그을림 흔적은 발견됐지만, 건축물은 전혀 손상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산불로 인한 사찰 문화재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안동 봉정사, 영주 부석사, 의성 고운사 등 주요 사찰에 보관된 유물들을 긴급히 안전한 장소로 옮기는 조치를 진행 중이다.
옮겨진 유물은 보물 10건과 시도지정유산 5건 등 총 15건에 달한다.
이들에는 고운사의 석조여래좌상을 비롯해, 부석사의 고려목판과 오불회 괘불탱, 봉정사의 목조관음보살좌상과 아미타설법도, 봉황사의 삼세불화 및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영덕 장륙사의 건칠관음보살좌상, 영산회상도와 지장시왕도 등 국내 불교미술을 대표하는 유물들이 포함돼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산불 피해를 통해 사찰과 같은 산악지역 문화재 보호 시스템이 여전히 미흡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지리적 특성상 진화 인력과 장비 접근이 어렵고, 산림과 가까워 화재에 취약한 구조를 가지고 있는 사찰들은 보다 체계적이고 상시적인 방재 인프라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현재 위기경보 단계를 ‘심각’으로 격상하고 전국의 주요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비상 체제를 가동 중이다.
특히 향후에는 산불 가능성이 높은 계절에 대비해 지역 문화재에 대한 사전 방염 작업, 유물 이송 매뉴얼 확립, 실시간 대응 체계 구축 등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번 청송 보광사 만세루의 전소는 단순히 하나의 건축물이 소실된 것이 아닌, 한 시대의 제례 문화와 건축 미학이 사라진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화재 피해가 더 이상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체계적이고 실효성 있는 문화재 보호 대책이 반드시 마련되어야 할 시점이다.
이소율 (lsy@sabanamedia.com) 기사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