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건 죽이지 않는다”…’절밥’, 국가무형문화재 된다, 전통 사찰 음식 가치 재조명

사찰음식이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될 전망이다.
국가유산청은 21일 “사찰음식을 신규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 예고한다”고 발표하며, 한국 전통 식문화 중 하나인 사찰음식의 역사성과 문화적 가치를 본격적으로 인정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사찰음식은 불교의 철학이 그대로 녹아든 식문화로, 자연과 인간이 하나라는 불교의 기본 사상을 바탕으로 수천 년간 사찰에서 전승되어 왔다.
육류와 생선을 일절 사용하지 않고, 마늘과 파, 부추, 달래, 흥거(아삭한 향채소) 등 오신채마저도 배제하는 채식 조리 방식이 특징이다.
오신채는 자극적인 향과 기운으로 인해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불교적 믿음 때문이다.
대신 제철 식재료, 산과 들에서 나는 나물, 발효된 장류 등으로 자연의 순리를 따르며 음식을 만든다.
사찰음식은 단순히 승려의 식사가 아니다. 수행과 명상의 일환으로,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는 불교의 불살생 정신을 실천하는 수단이며, 절제와 공양의 가치를 담고 있다.
특히 대표적인 식사 의식인 ‘발우공양’은 음식을 허투루 낭비하지 않고 자연과 생명에 감사하는 마음을 실천하는 방식으로 세계적으로도 독창성을 인정받고 있다.
한국의 사찰음식은 불교 전래 초기인 삼국시대부터 뿌리를 내렸으며, 오랜 시간에 걸쳐 우리 민족의 식문화와 상호작용하며 발전해왔다.
고려시대의 『동국이상국집』, 『조계진각국사어록』, 『목은시고』와 같은 문헌 속에서 채식만두나 산갓김치 등과 관련된 기록이 발견되며, 조선시대에는 『묵재일기』와 『산중일기』 등을 통해 사찰이 장류 및 저장식품의 생산지이자 지역사회와의 교류 중심지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사찰음식은 단순한 음식의 범주를 넘어선다. 사찰이 위치한 각 지역의 환경과 기후, 식재료의 특성이 반영돼 있어 향토성도 짙다.
산간지역에서는 더덕이나 도라지와 같은 뿌리채소 중심의 음식이, 남부 해안지역 사찰에서는 해조류나 말린 채소 중심의 음식이 발전해왔다.
이러한 지역성과 불교 철학이 결합된 음식문화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한국 사찰음식만의 고유한 미덕이자 특색으로 평가된다.
국가유산청은 “사찰음식은 단지 과거의 유산이 아닌, 지금 이 순간에도 전국의 사찰에서 승려들에 의해 살아 있는 문화로 전승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높다”고 전했다.
이어 “전통 조리법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인의 입맛에 맞게 창의적으로 재해석되고 있는 점도 문화유산으로서의 미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밝혔다.
실제로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외에서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은 크게 증가했다.
건강식으로서의 가치, 채식에 대한 관심 증가, 슬로우푸드 트렌드와 맞물리면서 사찰음식은 다양한 콘텐츠와 교육 프로그램으로 재조명받고 있다.
서울, 전주, 양산 등지에는 사찰음식 전문 교육관과 체험관이 생겨나고 있으며, 외국인 대상의 사찰음식 체험 프로그램도 활발하게 운영 중이다.
이번 지정 예고는 사찰음식이 단순한 ‘비건’ 또는 ‘건강식’이라는 트렌드를 넘어, 한국 고유의 철학과 역사,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전통을 담고 있다는 점을 국가적으로 재조명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지정 예고 기간은 30일로, 국가유산청은 공식 누리집의 ‘국가유산지정예고’ 게시판을 통해 국민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이후 무형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최종 지정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사찰음식이 정식으로 국가무형유산으로 등재되면, 향후 전통 조리법 보존은 물론, 교육 콘텐츠 확산, 글로벌 문화 콘텐츠로의 발전 가능성도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무엇보다 ‘살아있는 것을 죽이지 않는다’는 철학을 중심으로 한 이 전통 음식문화는,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생명 존중과 절제, 자연과의 공존을 실천하는 사찰음식이 국가의 유산으로 자리잡게 될 날이 머지않았다.
이소율 (lsy@sabanamedia.com) 기사제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