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핵심 요약
NPB 통산 최다 3085안타 기록 보유자 장훈이 2026년 9월 9일 향년 86세로 별세했다. 최초 3000안타와 504홈런을 남겼다.
- NPB 사상 최초 통산 3000안타와 역대 최다 3085안타
- 23시즌 2752경기 타율 0.319·504홈런·1676타점의 통산 성적
- 히로시마 피폭과 오른손 장애를 딛고 일본 프로야구 정상에 오른 선수 경력

일본 프로야구 통산 최다 3085안타 기록을 보유한 장훈이 2026년 9월 9일 향년 86세로 별세했다. 장훈은 1980년 NPB 역사상 최초로 통산 3000안타를 달성했고 1959년부터 1981년까지 23시즌 동안 2752경기에서 타율 0.319, 504홈런, 1676타점을 기록했다. 1990년에는 일본 야구전당에 헌액됐다.
장훈 별세, NPB 통산 최다 3085안타 전설 떠났다
일본 프로야구 역사에 ‘안타 제조기’라는 이름을 남긴 장훈이 2026년 9월 9일 별세했다. 향년 86세다. 장훈은 일본명 하리모토 이사오로도 잘 알려진 일본 프로야구의 대표적인 타자였다.
장훈을 설명하는 가장 상징적인 숫자는 3085다. 1959년 프로에 데뷔해 1981년 은퇴할 때까지 쌓은 통산 안타 수로, 2026년에도 NPB 역대 1위 기록으로 남아 있다.
장훈은 1980년에는 일본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3000안타 고지를 밟았다. 현역 은퇴 후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그의 통산 안타 기록을 넘어선 NPB 타자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장훈 23시즌 타율 0.319·3085안타·504홈런 남겼다
장훈은 1959년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닛타쿠 홈 플라이어스와 니혼햄 파이터스, 요미우리 자이언츠, 롯데 오리온스를 거치며 1981년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통산 기록은 2752경기, 9666타수 3085안타, 타율 0.319다. 홈런도 504개를 기록했고 1676타점과 1523득점을 남겼다. 장타력을 갖추면서도 안타 생산 능력이 뛰어났던 선수였다는 사실을 숫자가 그대로 보여준다.
통산 504홈런은 장훈이 단순한 교타자에 머물지 않았다는 점도 보여준다. 정확하게 공을 맞히는 능력과 함께 장타 생산까지 갖췄기 때문에 20년 넘게 중심 타자로 활약할 수 있었다.
장훈 1980년 일본 프로야구 최초 3000안타 달성
장훈의 선수 경력에서 가장 역사적인 순간은 1980년이었다. 당시 롯데 오리온스에서 뛰던 장훈은 NPB 역사상 처음으로 통산 3000안타를 달성했다.
3000안타는 긴 선수 생활과 꾸준한 출전, 높은 타격 능력이 모두 필요하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큰 기록이다. 장훈은 이 기록을 처음 만든 데 이어 은퇴할 때까지 안타를 3085개로 늘렸다.
2026년 9월 기준 NPB 통산 안타 순위에서도 장훈은 여전히 1위다. 노무라 가쓰야의 2901안타, 오 사다하루의 2786안타보다 앞서 있다. 45년 전 은퇴한 선수의 기록이 여전히 정상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장훈의 타격 능력을 설명할 수 있다.
장훈 1959년 신인왕부터 타격왕 7차례까지 정상급 활약
장훈은 프로 첫 시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1959년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한 첫해 신인왕에 오르며 곧바로 주전 타자로 자리 잡았다.
이후 타격왕을 7차례 차지했다. 1962년에는 퍼시픽리그 최우수선수에도 선정됐다. 베스트나인에도 여러 차례 이름을 올리며 오랜 기간 리그를 대표하는 타자로 활약했다.
특히 넓은 방향으로 타구를 보내는 광각 타격 능력은 장훈의 상징이었다. 특정 방향에 치우치지 않고 좌우를 넓게 활용한 타격으로 꾸준하게 안타를 만들어 ‘안타 제조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장훈 오른손 장애 딛고 왼손 타자로 일본 프로야구 정상
장훈의 선수 경력이 더욱 특별한 이유는 어린 시절의 신체적 어려움을 극복한 과정에도 있다. 장훈은 어린 시절 화상을 입어 오른손에 장애가 남았다.
하지만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왼손을 중심으로 타격을 익히며 선수로 성장했고 오사카의 야구 명문 학교를 거쳐 프로 무대까지 진출했다.
오른손이 자유롭지 않은 상황에서 3000안타를 넘어선 타자가 됐다는 점은 그의 선수 경력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내가 보기에는 3085안타라는 숫자가 더 강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이 배경과 분리하기 어렵다. 단순히 오랫동안 야구를 한 선수가 아니라 신체적 제약을 안고도 역사적인 기록을 만든 타자였기 때문이다.
장훈 히로시마 원폭 피폭 경험도 생애의 중요한 배경
장훈은 1940년 일본 히로시마에서 태어났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됐을 당시 장훈은 다섯 살이었다.
장훈 역시 당시 히로시마에 있었던 피폭 경험자다. 가족에게도 큰 비극이 있었다. 여섯 살 위 누나를 원폭 피해로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과 피폭의 기억은 장훈의 어린 시절을 설명하는 중요한 배경이다. 이후 그는 야구선수로 성장해 일본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스타가 됐지만, 그의 삶에는 재일동포라는 정체성과 피폭 경험이 함께 존재했다.
장훈 요미우리·롯데 거쳐 1981년 현역 은퇴
장훈은 도에이 계열 구단에서 오랜 기간 뛰고 난 뒤 1976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다. 당시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스타였던 오 사다하루와 한 팀에서 뛰며 강력한 중심 타선을 구성했다.
1979년까지 요미우리에서 뛴 장훈은 1980년 롯데 오리온스로 옮겼다. 그리고 롯데 소속으로 역사적인 통산 3000안타를 달성했다.
1981년을 마지막으로 현역 생활을 끝냈다. 1959년부터 1981년까지 23시즌을 뛰었으며 공식 경기 출전 수는 2752경기에 달했다.
장훈 1990년 일본 야구전당 헌액, 기록과 공로 인정
은퇴 후에도 장훈의 선수 경력에 대한 평가는 이어졌다. 장훈은 1990년 일본 야구전당에 헌액됐다.
일본 야구전당은 일본 야구 발전에 크게 기여한 인물들의 업적을 기리는 공간이다. 장훈은 통산 3085안타와 타격왕 7회, MVP 1회 등 현역 시절의 성과를 인정받아 이름을 올렸다.
특히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은 시간이 지나도 그의 이름을 계속 일본 프로야구 기록표 맨 위에 남겨놓았다. 은퇴 뒤 방송과 야구계 활동으로도 이름을 알렸지만 선수 장훈의 가장 확실한 유산은 결국 3085안타다.
장훈 한국 프로야구 출범에도 힘 보탠 재일동포 야구인
장훈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프로야구에서 선수 생활을 했지만 한국 야구와도 깊은 관계를 이어왔다. 국내에서는 일본명보다 한국 이름인 ‘장훈’으로 널리 알려졌다.
특히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을 전후해 한국야구위원회와 인연을 맺고 한국 야구 발전을 지원했다. 일본에서 쌓은 선수 경험과 인지도를 바탕으로 한국 프로야구가 자리를 잡는 과정에 힘을 보탰다.
한국 야구계와의 교류 역시 선수 은퇴 이후까지 이어졌다. 때문에 장훈의 별세는 일본 프로야구뿐 아니라 한국 야구의 역사와 재일동포 스포츠사를 함께 돌아보게 하는 소식이다.
장훈 국적은 오랫동안 한국 유지하다 2024년 일본 국적 취득 공개
장훈의 국적 문제 역시 그의 생애를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부분이다. 그는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선수로 활약하면서도 오랜 기간 한국 국적을 유지했다.
이후 장훈은 2024년 공개된 인터뷰에서 일본 국적을 취득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따라서 생애 전체를 단순히 한 국적이나 하나의 정체성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재일동포로 살아온 그의 역사적 배경을 함께 보는 것이 정확하다.
국적 변화와 관계없이 그가 한국과 일본 양쪽 야구계에서 오랫동안 이름을 알려온 인물이라는 점은 변하지 않는다. 선수 시절의 기록뿐 아니라 한일 야구사의 접점에 존재했던 인물이기도 했다.
장훈 3085안타는 45년이 지나도 깨지지 않은 기록
장훈은 1981년 현역에서 은퇴했다. 하지만 2026년에도 NPB 통산 최다 안타 기록은 여전히 3085개로 그의 이름 옆에 남아 있다.
프로야구에서는 시즌 수와 경기 수가 늘고 훈련법과 선수 관리 방식도 계속 발전했다. 그럼에도 NPB에서 장훈보다 많은 안타를 친 선수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3000안타라는 상징적인 벽을 처음 넘어섰고 최종적으로 3085개까지 기록했다는 점에서 장훈의 기록은 일본 프로야구 역사에서도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 장훈을 ‘전설적 타자’라고 부르는 가장 객관적인 근거가 바로 이 숫자다.
장훈 별세가 남긴 것은 ‘안타 제조기’라는 기록 이상의 야구사
장훈의 야구 인생은 하나의 기록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른손 장애를 안고 왼손 타자로 성장했고 히로시마 원폭 피폭이라는 어린 시절을 지나 일본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가 됐다.
1959년 신인왕을 시작으로 7차례 타격왕, 1962년 MVP, 1980년 최초 3000안타, 통산 3085안타와 504홈런을 남겼다. 이후 1990년 일본 야구전당에 이름을 올렸다.
2026년 9월 9일 장훈의 별세로 일본 프로야구의 한 시대를 상징했던 인물이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NPB 기록표의 통산 안타 1위에는 여전히 ‘3085’라는 숫자와 장훈의 이름이 남아 있다. 그의 야구 인생을 가장 명확하게 설명하는 기록이자 쉽게 사라지지 않을 유산이다.
자주 묻는 질문
장훈은 언제 몇 살로 별세했나?
일본 프로야구의 전설적 타자 장훈은 2026년 9월 9일 별세했다. 향년 86세로, NPB 통산 최다 3085안타 기록을 남겼다.
장훈의 일본 프로야구 통산 안타 기록은 몇 개인가?
장훈은 1959년부터 1981년까지 NPB에서 통산 3085안타를 기록했다. 2026년에도 일본 프로야구 통산 역대 1위 기록이다.
장훈은 일본 프로야구 최초 3000안타를 언제 달성했나?
장훈은 롯데 오리온스에서 뛰던 1980년 NPB 역사상 처음으로 통산 3000안타를 달성했고 은퇴 때까지 기록을 3085안타로 늘렸다.
장훈의 NPB 통산 성적은 어떻게 되나?
장훈은 23시즌 2752경기에서 타율 0.319, 3085안타, 504홈런, 1676타점을 기록했다. 타격왕도 7차례 차지했다.
장훈은 한국 야구와 어떤 인연이 있었나?
장훈은 재일동포 출신으로 오랫동안 한국 국적을 유지했으며 1982년 한국 프로야구 출범 과정에서도 한국 야구 발전에 힘을 보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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