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0·70년대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며 한 시대의 스크린을 빛냈던 원로배우 김지미가 향년 85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영화계에 따르면 김지미는 최근 대상포진 후유증으로 건강이 급격히 악화됐고, 미국에서 별세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국 영화사의 중심에 자리한 인물이었기에 영화계와 대중의 애도도 깊어지고 있습니다.
1940년 충청남도에서 태어난 김지미는 1957년 영화 ‘황혼열차’를 통해 배우로 데뷔했습니다.
이후 ‘초설’, ‘별아 내가슴에’, ‘산 넘어 바다 건너’, ‘대원군과 민비’, ‘여인숙’, ‘폭풍의 언덕’, ‘장희빈’, ‘춘향전’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며 1960년대와 1970년대 한국 영화의 중흥기를 주도한 핵심 배우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시대를 대표하는 미모와 독보적인 연기력으로 ‘한국의 엘리자베스 테일러’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여러 감독들이 선호한 주연 배우로 지속적인 필모그래피를 쌓았습니다.
특히 김수용 감독의 ‘토지’(1974), 임권택 감독의 ‘길소뜸’(1985) 등 거장들과의 협업은 그의 연기적 깊이를 한 단계 더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한국 영화의 정체성과 미학을 구축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무려 700여편에 달하는 출연작 수는 당대 최고 흥행 여자 배우로서의 위상을 실감하게 합니다.
수상 경력도 화려했습니다.
1969년 제5회 백상예술대상 영화부문 여자 최우수연기상, 제7회 청룡영화상 여우주연상, 제15회 부일영화상 여우주연상, 제13회 대종상 여우주연상, 파나마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 등 굵직한 상들을 수상하며 한국 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감을 구축했습니다.
국내외에서 연기력을 인정받으며 한국 영화의 얼굴로 오랫동안 사랑받았습니다.
2010년에는 ‘화려한 여배우’라는 이름으로 ‘영화인 명예의 전당’에 올랐고, 2016년 제7회 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 2019년 제9회 아름다운예술인상 공로예술인상 등을 수상하며 공로 또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배우 활동 외에도 제작사 ‘지미필름’을 설립해 제작자로 활동하는 등 한국 영화 산업 발전에도 꾸준히 기여했습니다.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며 제도와 환경을 개선하는 데에도 힘을 보탠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한국영화인총연합회와 한국영화배우협회는 현재 유족과 함께 영화인장을 위한 절차 준비에 돌입했습니다.
한 시대를 이끈 원로배우 김지미의 별세는 세대와 장르를 넘어 한국 영화계 전체의 큰 손실로 평가되고 있으며, 그의 방대한 작품 세계와 업적은 앞으로도 한국 영화사의 중요한 자산으로 남게 될 전망입니다.
김용현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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