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핵심 요약
1896년 치하포 사건 당시 김구에게 살해된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가 상인이 아닌 장교 출신 공작원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일본 측 사료가 발견됐다. 김구 탄생 150주년 학술대회에서 공개된 일본 외교 공문서는 그를 '장교'나 '일본병'으로 기록해, 김구의 회고록 '백범일지'의 내용을 뒷받침한다.
- 1896년 '치하포 사건' 피살 일본인이 장교 출신 공작원이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 사건 20여 년 후 일본 외교 공문서에 피살자를 '장교', '일본병'으로 기록한 사실이 확인됐다.
- 이번 발견은 '백범일지' 기록의 신빙성을 높이고, 김구의 행위를 '의거'로 재평가할 근거를 제공한다.
'치하포 사건' 피살자 신원 논쟁, 새 국면
백범 김구가 1896년 일으킨 '치하포 사건'의 피살 일본인이 단순 상인이 아닌, 군 장교 출신의 공작원이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하는 사료가 일본 외교 공문서를 통해 확인됐다. 이번 발견은 사건의 성격을 재평가하고, 김구의 회고록 '백범일지' 기록의 신빙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는 16일 서울 서대문구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에서 '백범 김구 탄생 150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열고 이 사건을 새로운 시각에서 조명했다. 이날 김영수 동북아역사재단 독도연구소장은 발표문을 통해 쓰치다 조스케(土田讓亮)가 상인으로 위장한 군인 신분이었을 정황이 다수 발견됐다고 밝혔다. 이는 그간 일본 측이 유지해 온 공식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내용이다.
日 공문서, 쓰치다를 '장교'로 기록
김영수 소장은 피살된 쓰치다가 한반도 침투 공작에 연루된 장교 출신 낭인이었음을 뒷받침하는 여러 사료를 제시하며 기존 통념에 의문을 제기했다. 김 소장의 주장은 김구의 행위가 개인적 살인이 아닌, 국모 시해에 대한 '의거(義擧)'였다는 해석에 힘을 싣는다.

엇갈린 기록: '백범일지'의 중위 vs 日의 '상인'
사건 직후부터 김구와 일본 측의 주장은 120년 넘게 극명하게 엇갈렸다. 김구는 자신의 회고록 '백범일지'에서 피살된 일본인이 칼을 차고 일본 군복을 입은 육군 중위였다고 명확히 기록했다. 그는 쓰치다를 명성황후 시해에 가담한 일본인으로 의심하고 '국모의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으로 그를 처단했다고 밝혔다. 반면 당시 일본 정부는 쓰치다 조스케가 '나가사키현 출신의 평민'이자 대마도에서 활동하던 상인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결정적 단서 된 일본 외교 문서
연구의 결정적 단서는 일본 측이 직접 작성한 외교 공문서에서 나왔다. 김 소장에 따르면, 사건 발생 약 20여 년 뒤 작성된 복수의 일본 외교 문서에서 쓰치다의 신분을 군인으로 기록한 사실이 확인됐다. 1920년 상해 주재 일본 총영사는 본국 보고서에서 쓰치다를 '일본 장교(少尉·소위)'로 명기했으며, 1923년 봉천 주재 총영사 보고서에서도 그를 '일본병(日本兵)'으로 기록했다. 이는 사건 초기 상인이라고 주장했던 일본의 공식 입장과 배치되는 내용이다.
사라진 육군 중위 '쓰치다 산지로'
김 소장은 일본 국립공문서관 자료 검색을 통해 구체적인 인물 정보까지 추적했다. '쓰치다'라는 성씨를 가진 인물을 조사한 결과, '쓰치다 산지로(土田三次郞)'라는 이름의 육군 보병 중위가 검색됐다. 이 인물의 기록은 청일전쟁 발발 직전인 1894년 1월 이후로는 행적이 나타나지 않는다. 당시 일본이 조선에 다수 첩보 인력을 파견했던 상황과 맞물려, 그가 신분을 위장하고 조선에서 활동했을 개연성을 높인다.

김구 탄생 150주년, 역사적 재평가 주목
백범 김구 탄생 150주년을 맞아 열린 이번 학술대회와 새로운 연구 결과는 '치하포 사건'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로 평가된다. 쓰치다가 실제 군인 신분으로 특수 임무를 띤 공작원이었다면, 김구의 행위는 민간인 살해가 아닌 적대국의 군사 요원을 제거한 의거로 재해석될 수 있다. 이번 연구가 두 쓰치다를 동일 인물로 확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 측 공식 기록을 통해 유력한 단서를 발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향후 추가 연구를 통해 128년 전 진실에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자주 묻는 질문
치하포 사건이란 무엇인가요?
1896년 황해도 치하포에서 청년 김구가 일본인 쓰치다 조스케를 살해한 사건입니다. 김구는 국모인 명성황후 시해에 대한 복수로 그를 처단했다고 밝혔습니다.
피살된 일본인의 신원이 왜 중요한가요?
그의 신원이 상인이면 개인적 살인이지만, 군 장교나 공작원이면 적대국 요원을 제거한 '의거'로 평가될 수 있어 사건의 성격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새로 발견된 증거는 무엇인가요?
사건 발생 20여 년 후 일본 외교관들이 작성한 공문서에서 피살자 쓰치다를 '일본 장교(소위)' 또는 '일본병'으로 기록한 내용이 발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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