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핵심 요약
탈북 여성들의 증언에 따르면 북한은 체계적인 성교육이 부재하며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이 억압된 사회다. 피임의 책임은 여성에게 전가되고, 고가의 콘돔 대신 부작용 있는 시술이 흔하다. 결혼 관계에서도 남편의 요구를 거부할 수 없는 등 남성 중심적 성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
- 탈북 여성들은 북한에서 체계적인 성교육을 받은 경험이 거의 없다고 증언했다.
- 피임은 여성의 몫으로 여겨지며, 콘돔은 4인 가족 밥값에 달할 정도로 비쌌다.
- 결혼 관계에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무시되고 남편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다.
탈북 여성들이 증언한 북한의 억압적 성문화
탈북 여성들의 증언을 통해 성교육과 피임 개념이 부재하고 모든 책임을 여성이 짊어지는 북한 성문화의 실상이 드러났다. BBC뉴스 코리아는 20대, 40대, 60대 탈북 여성 3명의 심층 인터뷰와 전문가 분석을 통해 북한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 문제를 다뤘다.

"손만 잡으면 임신인 줄 알았다"…성교육 부재의 현실
북한 사회에서는 체계적인 성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아, 여성들이 성에 관한 기본적인 지식 없이 성장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60대 탈북 여성 A씨는 BBC 인터뷰에서 "배란기도 모른다"며 "손만 잡으면 임신인 줄 알았고, 20세가 될 때까지도 그렇게 알고 있었다"고 털어놨다. 탈북 여성 다수는 한국에 입국한 뒤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인 하나원에서 처음 성교육을 받았다고 증언한다. 이러한 현실은 통일연구원이 2021년 발간한 '북한의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여성과 섹슈얼리티' 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성욕'과 '개인의 욕구'라는 개념이 없는 사회
북한 사회는 '성욕'뿐만 아니라 개인의 '욕구'라는 개념 자체가 희미해 여성들이 자신의 몸이 무엇을 원하는지 생각할 기회조차 갖기 어렵다는 전문가 분석이 있다. 전주람 서울시립대 교수는 BBC 인터뷰에서 이런 사회 분위기가 남성 중심적인 성관계 문화를 공고히 한다고 설명했다. 여성들은 성적 욕구를 표현하기 어려웠고, 관계에서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애무 같은 개념도 익숙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피임은 여성의 몫…"콘돔 하나가 4인 가족 밥값"
북한에서는 피임의 책임이 온전히 여성에게 지워지는 것으로 나타났고, 탈북 여성들은 주로 자궁 내 장치를 사용했다고 증언했다. 가장 흔한 피임 방법은 자궁 내 삽입 기구인 이른바 '고리'였다. 여성들은 중국에서 들어온 고리를 장마당(시장)에서 구해 병원에서 시술받았으며, 이후 출혈이나 허리 통증 같은 부작용을 겪는 경우도 많았다. 콘돔은 2010년대에 들어서야 사용되기 시작했으나 비싼 가격 탓에 대중화되지 못했다. 20대 탈북 여성 B씨는 "콘돔 하나가 4인 가족 밥값인데 남자들이 쓰겠느냐"고 반문하며 "장마당에서 숨겨놓고 팔았다"고 말했다.
산과 창고에서의 만남…연애 공간의 부재
연인들이 자유롭게 만날 사적인 공간이 부족해 외부 시선을 피해 산이나 창고 등에서 만나야 했다고 탈북 여성들은 증언했다. 여성들은 흙바닥에 깔 보자기를 직접 준비해야 했다. A씨는 "흙바닥에 깔아놓고 하거나, 아니면 그냥 서서 했다"며 "남자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여자가 다 챙겨야 했다"고 말했다. 간판 없는 여관이 일부 있었지만, 이용 사실이 알려지면 소문이 빠르게 퍼져 이용하기 어려웠다.
"남편이 원하면 거부 못 해"…결혼 관계 속 여성의 지위
결혼한 북한 여성에게 성적 자기결정권은 사실상 존재하지 않았고, 남편이 원할 때 거부하지 못하는 것을 아내의 의무로 여기는 분위기가 강했다. 인터뷰에 응한 여성들은 남편이 원하면 응하는 것이 아내의 의무처럼 여겨졌다고 말했다. A씨는 "북한에서 성관계를 하고 싶어서 한 적은 없다"고 단언했다. 다른 여성들 또한 남편이 술에 취했거나 자신이 생리 중인 상황에서도 남편의 요구를 거부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남편의 외도나 폭력에도 아내이자 어머니로서 참고 남편을 받들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강했다고 한다.
이혼 통제 강화…여성에게 책임 전가하는 사회적 시선
과거부터 이혼 책임을 여성에게 돌리는 분위기가 강했던 북한에서, 최근 당국이 이혼 통제를 더욱 강화하는 추세다. 최설 북한대학원대학교 심연북한연구소 객원연구원에 따르면 북한은 사실혼이나 미신고 동거, 이혼을 먼저 신청하는 주민을 처벌하고 있다. 2025년 7월부터는 이혼한 부부 양쪽 모두를 노동단련대로 보내는 조치까지 추가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착 후 되찾은 '자기결정권'

북한을 떠나 한국에 정착한 여성들은 자신의 몸과 관계를 스스로 선택하는 경험을 통해 비로소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식하게 됐다. 이들은 카페에서 원하는 음료를 고르고, 자신에게 맞는 화장품과 속옷을 선택하는 평범한 일상조차 북한에서는 익숙하지 않았던 '선택'의 경험이라고 말했다. 한 여성은 한국 남성과 교제하며 상대방이 자신의 감정이나 몸 상태를 먼저 묻고 배려하는 것을 처음 경험했다고 밝혔다. A씨는 북한에서의 관계가 일방적인 '봉사' 같았다면,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BBC는 이를 단순한 남북한의 문화 차이를 넘어 '여성의 자기결정권' 문제로 해석했다.
본 기사는 BBC뉴스 코리아의 '아무도 내게 원하냐 묻지 않았다…탈북 여성이 말하는 북한의 성과 사랑' 기사와 통일연구원의 '북한의 성·재생산 건강과 권리, 여성과 섹슈얼리티' 보고서(2021)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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